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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우스란
역사와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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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우스의 시작 흔히 ‘인형의 집’이라고 번역되는 돌하우스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800년경 세워진 이집트 유적에서 모형으로 된 배와 집이 발굴됐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사후세계를 인정했던 이집트인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영혼을 위하여 작은 모형들을 무덤에 매장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형태와 목적은 아니었지만 한때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던 이 모형들은, 부족하나마 이집트를 돌하우스의
발원지라고 우기기에(?) 부담이 없는 증거물인 셈이다.
고대문명의 백미로 불리는 그리스 로마 유적에서도 돌하우스를 구성하는 소품들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생활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식기와 가구 등의 미니어쳐가 그것인데, 미니어쳐를 즐기는 기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돌하우스를 문화유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견해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뒤에서 언급하게 될 16세기 돌하우스 역시 그렇지만, 이들 고대 돌하우스에는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부터 15세기경까지 돌하우스의 역사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돌하우스가 재질적으로 보존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분명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현대 돌하우스의 원형으로 우리들이 지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하우스의 원형은 16세기초에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과 네덜란드로부터 시작됐다는 설이
양립하지만,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독일쪽이 더 유력한 듯하다.

 

자긍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독일에서는 돌하우스라는 상용화된 이름 대신 푸펜하우스(Puppenhaus)라는 용어를 따로 사용하고 있다.
‘기록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1558년 독일 남부 바바리아 지방의 알브레히트 백작이 소유했던 돌하우스라고 알려져 있다.

이 돌하우스는 당시 거리의 모습을 충분히 재현한 것으로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대부분 소실됐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알브레히트 백작은 꽤 열광적인 수집가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딸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돌하우스를 수집했지만 후에 자신이 흠뻑 빠져 거주했던 집은 물론 성곽도시
전체를 돌하우스로 만들도록 명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알브레히트백작의 대표적인 소장품은 1574년에 제작된 4층 규모의 돌하우스로,장엄하고 화려해 예술작품으로
까지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돌하우스 역시 아쉽게도 1674년 화재로 전소돼 그 명성만 전해내려올 뿐이다.
이와 함께 네덜란드와 영국의 귀족들 역시 자신의 집을 축소해 만든 돌하우스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실제로 상당한 수준의 돌하우스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왕족의 특별주문으로 사치스럽지만 예술적 의미가 매우 강한 돌하우스가 제작됐다고 한다.
이 돌하우스를 보고 감동한 러시아의 황제가 제작을 의뢰했으나 청구서에 적힌 가격이 너무 높아 허둥지둥 취소했다는 에피소드가 남아있을 정도니 그 화려함과 정교함은 물론이거니와 돌하우스에 들인 그들의 정성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아니었나 추측만 할 뿐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16세기의 돌하우스가 유럽 귀족들의 값비싼 취미생활의 일부였을 뿐 아니라 교육용 완구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독일에서는 여아가 자라나면 ‘어느 집에 시집가든 창피하지 않도록’ 예절교육의 일환으로 테이블매너 등을 가르쳤는데 그 도구가 바로 돌하우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돌하우스가 완구로서의 기능을 갖게 된 것은 아마 이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17 세기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돌하우스가 제작된 시기다.
1611년 만들어져 현재 독일 뉴른베르그의 국립박물관 에 보관돼있는 도켄하우스가 바로 그것이다. 도켄하우스 이후 돌하우스가 그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보이는 것은 이 시기 들어 돌하우스 제작에 일반인들의 참여가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왕족이나 귀족의 사치스러운 취미생활이었던 돌하우스가 점차
상류계급과 일반 서민들의 가정에까지 내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인생활을 중시하는 유럽인들의 인생철학이 담긴 거실, 생활 감각이 넘치는 부엌, 홍보에 이용된 여러종류의 모형 상점들이 다채로움을 한껏 뽐냈던 시기가 바로 17, 18세기였다.

 

18세기와 19세기의 교차점인 1800년경 독일에서는 ‘ 뉴른베르그 키친 ’이라 불리는 가사교육용 돌하우스가 일반인에게 판매됐다. 남비, 그릇,
조리기구 등 각종 기구들이 제작돼 시중에 유통됐다.
독일의 돌하우스가 놀이도구 및 교육적인 요소가 강한, 문이 없는 개방타입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와는 별도로 귀족들이 중심이 된 돌하우스 제작 역시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1600년대 후반 네덜란드 귀족들은 토기, 그림, 가구 등의 수집에 매우 열심이었다.


가치가 있는 물건을 찾아내 수집하는 그들의 습관은 어김없이 돌하우스에도 손을 뻗쳐, 전문가가 손으로 만든
일상 생활용품의 축소 모형을 실제의 장식장에 넣어 인테리어로 즐겼다.
실제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축소모형은 상아나 은을 재료로 한 것들도 있어 작은
미술품 또는 수집품으로 가치가 매우 높았다.
캐비닛하우스라고 불렸던 이것들은 가구의 캐비닛 속에 몇 개의 돌하우스 및 작은 소품을 비치한 매우 호화스러운 형태였으며 예술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는 국보급 작품의 반열에까지 오른 상태다.

중세유럽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돌하우스는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유럽은 물론 이고 미국에서는 크래프트로서 인기가 높고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새로운 취미로 주목받고 있다.

 

돌하우스가 이처럼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희소성이다.
돌하우스는 제작자의 손재주는 물론 미적감각과 관찰력, 디스플레이
성향 등에 크게 좌우된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공장에서
찍어낸 조립식 돌하우스를 제외한다면 세상의 돌하우스는 십인십색이다.

마치 유명 작가의 그림이나 조각품처럼 세상에서 딱 하나일 가능성은
거의 100%다.그것이 제작당시의 시대풍속을 잘 보여주거나 예술성을 인정받았다면 희소가치는 상당할 것이다.

돌하우스의 또다른 매력은 사실성이다.
돌하우스를 구성하는 많은 종류의 건물은 물론 그 안에 배치되는 소품들은 모두 실제 물건의 축소판이다.
유럽의 경우 실제와 똑같은 모양의 돌하우스를 제작하는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존재하기도 한다. 돌하우스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들이 만들어놓은 모형에 감탄하며,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돌하우스는 실제 가옥이나 물건보다 무조건 작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돌하우스에는 조화와 균형을 위한 규격이 정해져 있다.
실제의 12분의 1크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전해내려 온다. 최근 들어 24분의 1과 48분의 1크기도
등장했지만 12분의 1 규격이 애용된다. 12분의 1 축소비율은 20세기초 미니어쳐세계에 심취했던 영국여왕 메리의 돌하우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왕이었던 조지5세는 1924년 그의 부인 메리가 거주한다는 가정하에 5층 규모의 초대형 돌하우스를 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 다. 이 건물의 디자인을 맡은 사람은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경이었다.
루티엔스경은 여왕이 살 집이라면 당연히 최첨단의 기술이 적용된 최고급의 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들였다. 돌하우스 제작이 국가적 프로젝트가 된 것이다.

 

돌하우스 제작회의에는 보석상, 와인 제조업체, 제초기 생산업체, 엘리베이터 제작회사, 수도국, 침구류회사,
롤스로이스자동차 생산업체 등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소설 ‘셜록홈즈’로 유명한 코난도일의 모습도 보였다.

 

5층 건물의 돌하우스에는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5대의 롤스로이스와 차고, 손잡이를 돌리면 온수가 나오는
급탕설비 등이 갖춰질 예정이었다. 지하의 와인보관실에는 실제 빈티지와인이 든 와인병을 마련해야 했으며
침대나 베개 등 침구류의 커버에는 왕가의 표시인 ‘R’이란 글자가 자수로 새겨져야 했다. 코난도일은 책장에
꽂을 책을 만들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이 실제처럼 정확하게 들어맞기 위해서는 축척이 필요했다.
가구에서 수도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니어처를 제작해 한 채의 집속에 들여놓아야 했기 때문에 각 소품들의
사이즈를 결정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더군다나 여왕이 소장할 돌하우스였기에 한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았다.

 

장시간의 회의 결과, 12분의 1의 스케일이 채택됐다. 왜 하필 12분의 1인가. 그 이유는 기준이 되는 단위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건의 길이를 재는 단위는 미터다. 미터 법을 사용할 경우 미터를 센티나 밀리로 축소하면
100분의 1이나 1,000분의 1의 축척이 된다.
그러나 영국은 다르다. 지금도 그렇지만 20세기초 영국은 길이를 재는 단위에 피트나 인치를 사용했다.
미터와는 달리 1피트는 12인치다. 제작팀은 소장 및 감상의 편의성과 제작의 완성도를 위해 모든 것의 크기를 한단계씩 낮추기로 했 으며 그래서 탄생한 것이 12분의 1 규격이었던 것이다.

 

결국 현재의 돌하우스는 1924년의 프로젝트에서 그 크기가 정 해졌으며 앞으로 이변이 없는 한 이 규칙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돌하우스의 역사를 대강 훑어보았다.
돌하우스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에 상식적인 답을 하는 데는 충분할 듯 싶다.